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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 - 체제에 대항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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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그 태동의 순간에 맞보았던 빙하기를 스스로의 손으로 또 다시 맞이하게 되고 모든 생명체가 멸종한 채로 마지막 노아의 방주인 열차만이 세상에 존재한다. 이 열차는 세계를 정확히 1년에 한 바퀴씩 돌면서 돌고 그 동력 역시 거의 무한하여 모든 생명체의 마지막 보루이다. 하지만 이 열차에는 계급이 존재하여 가장 앞머리에 모든 열차를 제어하는 절대자가 군림하고 있고 가장 마지막 꼬리칸에는 무급자, 빈민층이 거주하고 있다. 이 정도가 이 영화의 핵심 세계관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다양한 감상평들을 읽어봤는데,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글을 몇 개 꼽자면 먼저 봉준호 감독의 변태성(..)을 기반으로 작성한 설국열차 19금 강상 그리고 열차와 인류의 역사를 연결지어 설명한 한 블로그 포스팅 등이 있다. 그 밖에 결국 백인이 이룩한 열차와 역사는 멸망하고 흑인과 동양인이 최후의 아담과 이브가 되었다는 해석이라거나 월가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식 새로운 계급사회에 대한 비판이라고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다.

1차적으로 나에게 이 영화는 한국인이 만들었고 한국인이 나온 디스토피아물이다. 상당히 고전적으로 쓰이는 빙하기로 인한 인류 멸망, 그리고 그 멸망의 특성상 인류는 자유롭지 못하고 어떤 공간에 갖혀서 그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들. 브이포반덴타, 이퀼리브리엄 등의 단순히 독재자나 체제의 붕괴를 통해 그 좌절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상황을 유지하기 위하여 그 독재자, 체제가 유지되어야하고 결국 그 독재자를 마주하게 된 젊은 혁명가도 현실을 마주하고 절망하게 되는 그런 스토리. 사실 그래서 천재지변이나 핵전쟁, Y2K등 인류가 제어할 수 없는 재앙으로 인해 초래된 포스트 아포칼립스물들은 더 좌절스럽고 더 절망스럽다. 인류의 가장 추악한 본성이 드러나고 그 이유가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정말 생존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 그리고 설국열차는 그러한 상황에서 억지스러운 상황일지라도 자신만의 절망스러운 세계관을 잘 구축하고 유지해나가고 있는 자기모순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많은 요소들이 장치되어있는 그런 디스토피아물일 뿐이다.

일반적으로 인류의 멸망을 그리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물, 특히 그 중에서도 체제적인 문제가 동반되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영화들은 공통적으로 전달하고자하는 메시지가 꽤나 뚜렷한 편이다. 하지만 사실 설국열차는 이 영화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를 유추하는 것이 꽤 어려운 편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래서 예술영화라고 얘기하기도 하는데, 그 얘기도 어느 정도는 맞는 얘기가 아닐까 싶다. 다만 내가 느낀 설국열차에 대해 간략하게 말을 해보자면 ‘체제의 붕괴’ 그 자체에 대해서 얘기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열차가 인류의 역사를 대변하거나 혹은 여성과 남성 간의 성관계를 묘사한 것이거나, 전부 흥미로운 해석이고 꽤 재미있게 읽은 부분이지만, 내가 생각했을 때 이 열차 자체는 어떤 특정한 무언가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체제’ 그 자체를 얘기하는 것이 아닐까싶다. 결국 커티스가 그렇게 부당하다고 느끼면서 앞으로 뛰어갔던 이유는 꼬리칸에서 받고 있는 부당한 대우들과 더 이상 남아있을 것도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을 앗아가는 폭력적인 억압 그 자체에 대항하고 그 체제를 붕괴시키기 위함이었다. 결국 윌포드를 죽이고 열차를 차지하여 이런 부당한 대우를 없애야한다가 그의 생각이 아니었을까. 이는 자발적으로 체제상에서 억압받던 저계급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권과 주권을 지키기 위하여 들고 일어난 일종의 혁명이다. 혁명의 첫 날 혁명군의 물을 차지하게 된다. 그리고 길리엄은 여기까지만 차지하고 더 이상 전진하지 말자고 권유한다. 이는 아마도 자신의 삶에서 가장 기초적인 것들을 억압받던 사람들이 그 기본적인 욕구를 해결하고, 더 넓은 공간 식량과 물의 안정적인 공급을 차지하고 그 상태에서 만족하여 더 이상의 체제의 변혁이 아니라 이 체제상에서 본인들이 누릴 수 있는 권리를 확대하는 사람들을 얘기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커티스는 앞으로 전진한다. 부조리한 자가 우리를 다스린다면 결국에 우리는 언젠가 다시 진압되고 말 것이다 라는 논리다. 이는 이 체제를 지배하고 이 체제 자체가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를 전복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급진적인 주장을 대변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기 때문에 만족하고 안주하는 대다수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일부 특공대를 조직하여 윌포드를 끝장낼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진짜 주인공은 다름아닌 남궁민수 그리고 남궁요나이다. 꼬리층 사람들이 끝까지 이 열차의 체제를 붕괴시키고 열차 안에서의 변화와 혁명을 꿈꾸고 있었다면 남궁민수는 이 열차 자체에서 나가고 싶어한다. 처음부터 이 부녀는 꼬리칸에 속한 사람인지 아니면 앞칸에 속한 사람인지 언급조차 없다. 아마 윌포드의 문 앞에서 얘기하는 내용을 바탕으로 유추해보면 앞 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고, 거기다가 자그마치 보안 설계자 정도의 중요한 사람을 뒤에 버려두었을 것 같지는 않다만.. 직접적으로 언급은 되지 않는다. 즉 제 3의 세력이라는 의미이다. 쉽게 생각하면 윌포드는 한 국가의 왕, 귀족이고 커티스가 평민, 서민을 의미한다면 남궁민수는 아예 그 국가에 속하지 않은 제 3의 국가거나 세력인 셈이다. 그 체제 내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틀에 얽매이게 되지만 처음부터 그 체제에 속하지 않은 사람은 더 많은 것을 볼 수있는 법이다.

처음으로 창문을 통해 바깥 세상을 살펴보던 꼬리칸 사람들이 본 것은 여전히 얼어있고 여전히 죽어있는 바깥세상이었다. 하지만 남궁민수가 본 것은 자그마한 변화들. 자그마치 10년에 걸쳐 비행기의 꼬리 부분이 드러나는 것을 지켜보면서 눈이 녹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 그리고 이누이트족 부인이 있었기 때문에 중간에 나오는 총격전에서 눈송이를 일부러 CG처리까지 해가면서 보여준 이유 역시 그 눈송이를 통해 눈 결정이 형성된 곳의 온도를 유추했을 것이다. 결정적으로 식물칸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확신을 하게 된다. 작중에는 그것이 어떠한 것인지 언급되지 않는다. 마지막에 나온 북극곰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얘기도 있고 무언가 이누이트족이나 아니면 그 만이 알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닐까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그 만은 남들이 보려하지 않는 것들을 보고 그 안에서 가능성과 희망을 찾는다.

그리고 이 혁명은 처음부터 끝까지 역설과 모순으로 일관되어있다. 작중에 등장하는 크로놀이라는 약이 있다. 이런 형태의 마약은 사람들을 영원히 절망 속에 지내야 하는 사람들을 취하게 만들어 무료하고 갇힌 일상을 벗어나게 하는 디스토피아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퇴폐와 향략을 대변하는 요소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체제를 유지하고 이 체제에서 양산된 내부를 좀먹게 하는 요소들이 모여 열차를 멈추고 바깥으로 나가게 하는 열쇠가 된다. 그것보다도 더 역설적인 사실은 사실 문을 만든 사람이 남궁민수 본인이라는 사실. 본인이 만든 문을 본인이 뚫고 지나가면서 그는 이 세상의 창조주이자 동시에 파괴자이다. 하지만 창조와 파괴는 결코 독립적이지 않다. 파괴없이 창조가 일어날 수 없고 창조없이 파괴가 일어날 수 없다.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힌두교에도 브라마, 비뉴슈, 시바로 대변되는 창조 균형 파괴의 신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는 이 세상을 창조한 창조자이지만 동시에 파괴자이다. 열차안의 세상은 엔진이 아니라 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엔진은 세상을 움직이게 하는 요소이지만 이 세상 자체는 문으로 격리되고 문으로 구성되고 그리고 주인공들 역시 문을 넘어가려 노력을 한다. 결국 본인의 체제를 본인이 무너뜨리는 셈이다.

하고 싶은 얘기는 정말 많다 이를테면 횃불의 상징성, 어린 아이를 동력원으로 삼으며 나아가는 자기 모순적인 체제에 대한 지적, 아래에서 위로 올라간 커티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온 경비대장의 대칭성과 폭력성, 자신의 팔을 내어준 길리엄과 그렇지 못했던 커티스, 식인을 일삼던 꼬리칸에서 일어난 아비규환 등.. 하지만 너무 길어지면 좀 그러니깐 마지막으로 인상깊었던 것 하나만 언급하고 끝낼까 한다. 이 세상은 백인이 창조했다. 그래 방금 위에서 남궁민수가 창조했다고는 하지만 상징적인 의미에서 그들이 ‘나아가는 세상’과 그들이 ‘살고있는 세상’은 엄연히 다르다. 그 세상은 열차 그 자체이다. 그 열차는 윌포드에 의해서 만들어졌고, 동조자인 길리엄, 그리고 혁명을 주도하며 나아가는 커티스 모두 백인이다. 그들은 모두 이 ‘열차’안에서의 상황에만 관심이 있다. 그런데 정말 너무나 아이러닉하게도 그 세상을 창조하고 살아갔던 것은 백인이지만 결국 그 체제를 부셔버리고 살아남은 것은 동양인과 흑인이었다. 어떤 인종적인 메시지라기 보다는 결국 그 체제에서 순응한 사람들은 그 체제가 무너지고 나면 결국 자멸하고 쓰러지고 만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결국 살아남고 그 다음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 아니라 처음부터 다른 사람들이었던거지.

오랫만에 영화관련해서 긴 글을 써본 것 같다. 꽤나 말이 많은 작품이고 여러 해석들이 쏟아져나오는 상황인데 그 해석들이 전부 다 하고 싶은 말이 다르다는 것이 흥미롭다. 한국영화로는 최고 예산이지만 헐리웃에서는 저예산 디스토피아영화라는 사실에서 외국에서도 (그 가격에 기대할 수 있는 것에 비해) 호평이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고 국내 기록도 갈아치우고 있고하니 꽤 많은 사람들이 볼 것 같지만 역시 사람들이 많이 보는 한국영화의 요소를 몇 가지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 조금 불안 요소일 것 같다. (흥행의 측면에서) 아무쪼록 한국 영화계 입장에서는 꽤 큰 도전이었으니 성공적인 결말로 끝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