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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정원 - 비가 오면 스쳐가는 아련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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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속 5센치미터, 별을 쫓는 아이의 신카이 마코토가 신작을 들고 나왔다. 빛에 대해 집착에 가까울 정도의 묘사와 배경의 효과 등으로 유명한 에니메이션 작가이다. 뭐 사실 이걸 굳이 의식하고 봤던건 아니고, 예고편을 보았을 때 느껴지는 아련한 느낌 그리고 일본 2D 애니메이션에서만 느껴지는 특유의 느낌이 너무 좋아 보고싶었던 영화이다. 국내 개봉은 상당히 최근에 한 것 같은데, 불행히도 상영관이 많지가 않다. 그래서 집에 올라온 김에 보고 내려가기로 결정하고 심야로 보고 왔다.

비가 오면 스쳐가는 아련한 기억

‘비가 온다. 비가 오는 날은 하늘이 가까워지는 것 같아서 너무 좋다.’ 영화가 시작을 하면서 주인공이 나지막히 독백을 하는 대사이다. 전반적으로 영화 자체가 비 오는날에 대한 얘기이기 때문에 비오는 풍경을 많이 묘사한다. 영상미나 그 영상미를 끌어올리는 적절한 선곡만으로도 충분히 볼 가치가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이런 감성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만 한정되는 얘기일수는 있지만. 말로 하는 것 보다는 예고편에 묘사가 잘 되어있으니 유튜브 링크를 추가한다.

이 영화는 뭐랄까, 마치 스쳐지나갔지만 어딘가에 남아있는 첫사랑에 대한 아련한 기억같은 느낌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비가 와야지만 만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비록 아주 극적으로 터져오르지는 않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잔잔하게 흘러지나가는 아련한 느낌은 마치 추억하는 그 장소를 지나가면 문득 떠오르는 그런 사랑처럼 은은하게 스며든다. 비가 오면 만날 수 있는 그 사람. 얼마나 아련한가. 보면서 마음이 아픈 장면도 조금 있었고 (하지만 막 미어질듯이 아픈 장면은 아니고 그냥 안쓰러운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적절한 감정선을 유지하는 것이 참 좋았다. 만약 이 영화가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실사로 촬영이 되었다면 마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과 비슷한 느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건 꽤 많은 일본식 러브스토리 영화와 비슷한 구성이고 비슷한 감성이기는 하다. 우리나라처럼 갑작스럽게 터져나오는 그런 느낌이라기보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달까.

그림에 비하여 다소 모자란 스토리

이 영화를 보고 불만을 가지는 사람들은 아마 너무 짧은 상영시간 (1시간이 채 안된다) 그리고 무언가 제대로 끝난 것 같지 않은 전개 등이 불만일 것이다. 분명 그 아름다움에 비하면 스토리 측면이 모자라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딱 이 정도였기에 좋지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쓸데없는 감정선이 삽입되는 것 보다 은은하게 배어나오는 그 감성이 오히려 더 현실적이고 더 와닿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인물간의 대화가 많지도 않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그렇기에 더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오히려 너무 과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잔잔하게 깔고 들어가는 복선, 정말 갑작스럽게 밝혀지는 이야기들, 갑자기 과감하게 불량 학생들에게 쳐들어가 신나게 얻어터지고는 ‘맥주 먹고 전철에 뛰어들었어요’ 같은 농담을 던지는 것은 싱겁게 끝났다기보다는 우리 모두가 아마 그 순간에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우리의 감성이 아니라 일본인의 감성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들의 문화가 녹아있고 그들의 생각이 녹아있는 영화이다. 한국적인 영화의 잣대로만 평가하면 부족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영화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의 것이라는 인식이 너무 싫어

우리나라에는 애니메이션이라하면 아이들의 것이고 어른들이 보기에는 유치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애니메이션을 안 보는 것은 상관없지만,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닌데 아이들을 데리고 보러 오는 가족들은 줄어들었으면 좋겠다. 이 영화는 확실히 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영화가 아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은 아이들이 보기에도 무리가 없고 어른들에게도 잔잔한 메시지를 전해주는데에 반해, 이 영화는 지나치게 아이들에게 불친절하다. 비가 오면 스쳐가는 아련한 기억, 추억 그런 감성들을 어루만져주는 영화이지 아이들과 즐겁게 하하호호 하면서 보는 영화는 아닌데 그런 생각을 하고 온 가족들이 정말 많고, 덕분에 상당히 조용하게 감상하고 싶었던 작품을 감상하는데에 몰입도 좀 힘들었고 옆에서 계속 조잘대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기본적인 예의가 없는 것이 조금 화가 나기도 하더라. 하지만 이건 이미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박힌 편견이고 덕분에 국내 극장 애니메이션 산업도 전부 죽어버리고 일본으로 떠나 외주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씁쓸하더라. 마찬가지의 시선이 게임, 만화 그리고 전반적인 컨텐츠 산업에 퍼져있는 것도 마음아프다. 우리는 언제쯤 우리의 감성으로 쓰여진 우리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을까